환경

병원성 미생물과 물속에서 일반적인 생명체

slugger20 2021. 6. 5.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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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에 Frankland는 런던에 공급되는 상수를 검사하기 위해 Koch의 젤라틴 방법을 이용했다.

 

그들은 모래여과 후 지역 관공서의 요청에 따라 처리한 강물과 처리하지 않은 강물에서 세균 개체수를 1886, 1887, 1888년에 걸쳐 정기적으로 검사해 다. 그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내 졌다; 보통 처리되지 않은 강물에 존재하는 100 마리의 미생물로부터 물을 파는 회사 들은 물을 공급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미생물을 제거하였다. 물회사들이 채택한 방법으로 이와 같이 높은 비율의 미생물이 제거되는데 대하여 우리는 1886년 요오크(York)의 위생국에서 발표된 논문을 인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제거된 생물체들이 무해한 것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생물체 들의 제거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병원성 미생물들이 물속에서 일반적인 생명체들과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여과 과정 중에 이러한 생명체들의 움직임이 다른 미생물들과 똑같을 것이라는 것을 크게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요즈음 이런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들은 흔히 물에 쉽게 접근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해 널리 쓰이고 있는 여과과정에서 어떤 종류의 장애가 생기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세균학적으로 검사하는 것이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것을 “turgid”, “slightly turgid", "clear” 등의 지금까지 여과가 만족하게 되었는지 아닌지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용어들보 다는 훨씬 더 여과의 정도에 대하여 만족할만한 지식을 준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지금까지 본인이 설명한 과학적이고 중요한 기준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모래여과와 연관된 매우 흥미 있는 점을 보여주며 실제로 여과의 효과를 결 정 짓는 기본적인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확고한 기초 위에서 여과를 하게 한다. 그래서 런던에 있는 물 회사 중에 7개의 회사가 모래여과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가운데 이 회사들은 각각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회사도 정확하게 같은 조건 속에서 여과를 하고 있지는 않다. 실험적 목적을 위해서 이러한 특별히 좋은 여건은 우리들 중의 하나가 일반적인 과정을 변형하여 만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부터 얻어진 결과를 비교할 수 있게 하여 준다. 이런 것들에 관해서 1886년 토목공학 학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얻어진 결과는 그날 이후 전 세계에서 계속된 관찰에 의해서 충분하게 입증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공급된 물에 있는 미생물들의 수에 영향을 주기 위하여 좀 더 특별하게 고려된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a) 여과되지 않은 물의 저장능력, (b) 여과를 하기 위하여 쓰이는 가는 모래의 두께, (c) 여과속도, (d) 여상(filter beds)의 재생.

 

1800년대 후반에 생물학적 폐수처리 과정은 이들 체제에 대한 미생물의 중요성을 보편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물의 처리 과정과 병행하여 발달되었다. 1860년 대까지 미생물 활성과 관련된 것으로 도시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하수 처리과정은 하수 이용 농장(sewage farm)의 농경지 전역에 광역 관개에 의하여 침전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효과적인 공정이지만 넓은 부지를 필요로 했다. 1869년에 Edward Frankland 경이 간헐적 하향 여과법(intermittent downward filtration)을 개발했는데 이것은 암거(underdrain) 위에 미리 설치한 다공성 토양을 통해 하수를 여과하는 장치이다.

 

몇 시간씩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관개를 할 때는 유기물질의 산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토양의 통기를 고려해야 한다. 이 기술과 이것의 파생법을 이용해 관개하는데 필요한 토지 면적을 5-10 배 정도 줄였으나 약 1,000여 명의 (0. 05 mimd') 사람들이 내보내는 하수를 처리하는 데에는 0.4. ha(1 acre)의 면적이 여전히 필요하였다. Edward Frankland 경의 연구에 고무되어, 1889년 미국 메사추 우 세츠(Massachusetts) 주 보건당국의 로렌스 실험 연구소 (Lawrance Experimental Station)에서 간헐적 하향 여과법에 대한 그 지역의 토양, 모래와 자갈의 이용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를 하는 동안 굵은 자갈을 이용해 고속 처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러한 처리가 물리학적 변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돌을 감싸고 있는 생물학적 점액질(slime)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어졌다. 이 관찰은 pilot scale filter 제조의 자극이 되었는데 pilot scale filter는 대부 분의 기대를 충족시켰음은 물론 가장 효과적인 토양처리(land treatment)에서 얻을 수 있었던 부하율을 10 배씩이나 증가시켰다. 이런 개발로 말미암아 처리공정에 필 요한 토지면적을 감소시켰을 뿐 아니라, 적당한 굵은 여재는 수입할 수 있기 때문 에 처리가 국지 토양에 의존되지 않게 되었다. 하수처리에 대한 왕립협회(Royal Commission on Sewage Disposal)의 도움으로 영국에서는 삼투 여상(percolating filter)이 1880-1910년 사이에 급진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Percolating filter가 발전하는 동안 다른 처리 방법들도 이용되거나 발전하게 되었다.

 

다른 처리 방법들에는 접촉 여상(contact beds), 부패조(septic tanks), 임호프 조 tank) 그리고 물리 화학적 처리를 포함하였다. 이들 체제는 양질의 폐수를 방출하지 못했으며, 그들은 일련의 악취문제를 야기하는 혐기성 조건의 기간을 포 함하고 있었다. Mouras는 1860년에 하수에 있는 유기물질의 부분적 액화가 혐기성 상태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부패조의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 19 세기말 Massachusetts에 있는 H.W. Clark는 모든 하수를 부패시키는 것보다 고형 물질은 분리하여 일정 간격을 두고 독립된 부패조로 씻어 내려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효과적인 처리를 하는데 필요한 탱크용량은 이러한 방법으로 감소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차 슬럿지를 처리하는 데 사용하는 부패조는 오늘날 흔히 이용되는 혐기성 소화 공정의 시초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1885년에 Dibdin이 슬럿 지의 발효 시에는 혐기성 상태가 된다는 것을 관찰했으며, 그의 동료들에 의해 냄새에 대한 난점이 제기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18세기 중엽에 느린 혐기적 분해가 악취를 제거하는데 효과적이며, 슬럿지의 탈수(dewatering)를 향상한다고 알려졌다.

 

혐기성 분해에 관한 대부분의 초기 연구는 Birmingham에 있는 Saltley 공사에서 행하여졌는데, 이곳은 1930년대까지 전문적 기술의 중심지였다. 최초의 이 단계 소화조(two stage digester)(1912), 유동 기체 용기 (floating gas holders)(1924)와 저온 소화(cold digestion)(1935)에 관련된 실험들은 주목할만한 획기적인 일이었다. 혐 기성 공정에서의 미생물학적 기초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악취문제의 기원과 해결은 그 후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화하고자 하는 하수와 관련된 냄새 문 제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폐수로 공기를 불어넣는데 대한 연구를 하였는 데 Angus Smith 박사(1882)에 의하여 시도된 연구가 최초의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유럽의 연구자에는 Dupre와 Dibdin(1884), Hartland와 Kaye Parry(1888)가 있었으며, 미국의 Drown(1891), Mason과 Hine(1891), warning (1892-1894) 등도 있었다.

 

이들 연구자들은 산소는 폐수를 산화시킬 수 있다는 신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실험 결과는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없었다. 포기(aeration)는 부패가 일어나는 것을 늦출 수는 있으나, 방류수의 수질은 거의 향상되지 못했다. 미국에 있는 로렌스 실험 연구소에서 warning과 Lowcock는 여재를 인위적으로 통기 시켜서 방류수 수질을 향상할 수 있었다. 이런 고정 막 체제 (fixed film system)에 남아있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생물량은 공급된 산소를 충분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하수에 공기를 불어넣는 처리와 관련된 실험이 계속 진행됨에 따라 생물학적 처리를 향상하는 면에서의 부유물질의 중요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893년에 Mather와 Platt 회사는 포기조의 밑바닥에 침전된 불순물에 의해 방류수 수질이 뚜렷하게 개선되었다고 주장했다. 1897년 폐수의 포기에 관한 실험에서 Fowler는 입자성 물질의 빠른 침전과 더불어 냄새가 나지 않는 깨끗한 방류 수를 얻었다. 그러나 Manchester에서 연구 중이던 Fowler는 부유물질의 발생은 처리 공정에서의 실패라고 간주하였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생물학적 부식질이나 점액질의 존재 하에서 통기 되는 하수의 중요성이 미국과 영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New York에서는 Black와 Phelp가 호기성 상태 하에서 막 생장(film growth)에 필요한 표면적을 증가시키기 위해 굵은 돌 여재 대신 조밀하게 배치한 나무판을 사용하였다.

 

이 체제는 혐기성 통에서 오리나무 목을 사용했던 초기의 Travis의 "Colloider"와 유사하였다. 영국에서는 Dibdin이 slate bed reactor를 사용하는 유사한 방법을 개발하였으며 미국에서도 로렌스 실험 연구소의 Clark와 Gage가 slate bed reactor를 연구하고 있었다. 1912년에 Fowler는 항구의 오염을 조사하기 위해 New York과 로 렌스 실험 연구소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실시하고 있는 실험들을 보았다. Fowler는 그 방문을 통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결국 포기의 가치에 대한 그의 원래의 의 견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1913년 Fowler와 Mumford는 철을 함유한 광산수(pit water)에서 분리한 M7이라 이름 붙여진 세균종으로 실험을 하였다.

 

여기에는 침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부유 고형물을 하수에서 예비적으로 제거하는 공정이 관련되어 있다. 이 단계에서 나 온 방류수를 소량의 철염(ferric salt)과 함께 M7을 접종하여 반응조로 흘려보내고 이 용액에 공기를 불어넣어 탱크를 포기시켰다. Fowler와 Mumford는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응고된 물질이 침전되는데 시간이 걸렸으며, 결국 신속한 최종 여과 혹은 강으로 직접 방출될 수 있도록 깨끗한 물이 흘러나왔다. 미생물의 작용기작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으나 침전과 용해가 동시에 일어나며 어떤 유기물질들은 아 미도(amido) 유도체로 전환되고 일부는 응집되어 수산화 철(ferric hydroxide)과 함께 침전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체제에는 M7의 계속적인 접종이 필요했다. Fowler가 “폭탄”으로 평가할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이룬 것은 Fowler의 제자들인 Arden과 Lockett에 의해서였다. 1914년 5월에 제출된 논문에서 이들은 부식 고형물(humus solids)을 재순 환하 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함으로써 활성 슬럿지 (activated sludge) 공정이 나오게 되었다. 예비실험은 병에 들어있는 하수를 포기시킴으로써 행해졌다. 하수에서 질화 작용(nitrification)이 완전히 일어나는데 5 주 정도 걸리며 질화 작용 후에 깨끗이 산화된 물을 병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제거한다. 정제되지 않은 많은 양의 하수를 침 전 고형물과 섞어서 배양하며 그 과정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침전 고형물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24 시간 이내에 완전 산화가 이루어질 정도로 산화하는데 걸리는 시 간은 줄어들었다.

 

저자들은 참고용으로 그리고 좋은 용어가 없을 경우에 하수의 완 전한 산화 결과로 형성된 침전 고형물을 “활성 슬럿지”로 이름 붙여 왔다고 언급했다. Manchester의 Davyhulme에서 실시한 실험실 규모의 fill and draw 실험으로부터 이끌어낸 결론들은 매우 통찰력이 있었으며, 이러한 초기단계 공정들의 특징을 잘 밝혔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장기간의 포기로 나타나는 고체 산물인 활성 슬럿지는 하수의 단순 포기에 의해 , 처리되는 정화과정을 잘 되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활성 슬럿지는 산 화과 정을 매우 강화시킨다. (2) 가속 효과의 정도는 처리할 하수와 활성 슬럿지의 접촉 방법 및 혼합비율에 의존한다. (3) 슬럿지를 최고의 효율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산화되지 않은 하수의 고 형물이 축적되어서는 안 된다. 슬럿지의 활성이 활성 슬럿지의 적당한 포기에 의해서 유지되므로 그런 조건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하수를 활성 슬럿지와 접촉시켜야만 할 필요는 없다. (4) 온도는 산화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10°C 이하의 온도에서는 정화가 크게 감소한다.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질화 작용의 변화가 빨리 진행될 지라도 20-24°C까지에서는 정화효과에서 실질적인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포기의 초기에는 정화효과가 높은 온도에서 다소 영향을 받아 질화 작용이 늦어지나 후에 질화 작용의 속도가 조금 증가한다. (5) 실험실 조건하에서 잘 산화된 유출수는 6-9 시간 동안 활성 슬럿지와 접촉된 평균 농도(average strength)의 Manchester 하수의 통기를 통해 얻어진다.

 

일반적인 실험으로 측정되는 정화율은 효과적인 세균 여과에서 처리한 하수의 것과 비슷하다. 포기 기간은 처리할 하수의 농도와 요구되는 정화 정도에 따라 다르다. (6) 활성 슬럿지는 하수 슬럿지와 구성성분과 특성면에서 상당히 다르다. 그것은 산화가 잘된 조건과 해가 없는 조건에서 straining filter로 쉽게 배출되며 질 소 함량이 상당히 높다. 실험실 규모의 fill and draw 실험이 실험실 밖에서 성공적으로 반복되었다. 이 공정의 빠른 발전으로, 하루에 250,000 갈론을 처리하는 최초의 연속 처리 체제가 1917년 9월에 Manchester의 Withington에서 작동되었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초기 실험 장소인 Manchester의 Davyhulme에서 진행되어 생물학적 하수처리 과정 (biological sewage treatment)을 대규모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확립되었다.

 

초기의 Arden과 Lockett의 성공으로 활성 슬럿지 공정이 널리 채택되었으나 폐수 처리에서의 미생물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에는 중요한 발전이 없었다. 1865-1866년 하천오염 방지위원회(River Pollution Commission)는 여과에 의한 하수처리가 단지 기계적인 것뿐 아니라 화학적 산화가 관여한다고 공포했다. 그때 당시에도 미생물의 역할이 명확하게 인정받지 못했다. Davyhulme의 활성 슬럿지 공장을 설립한 지 75 년이 흘렀지만 Wooldridge와 Standfast에 의하면 유기물질의 호기성 분해는 전 적으로 화학적 공정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이 여전히 있었다고 한다.

 

Wooldridge와 Standfast(1933)는 하수의 산화는 미생물의 작용으로 일어난다고 주 장하였다. 그들은 또한 미생물의 생존력에 관한 중요한 연구를 하였다. 비록 세균의 효소들은 그대로 보존되지만 존재하는 세균의 1% 이하만이 생존해 있었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모든 기질의 사용이 성장과정과 연결되어있지 않다는 것의 이해와 함께 이 사실의 중요한 의미가 30 년동안 언급되지 않았다. 이것은 Monod(1950), Novick와 Szilard(1950)가 처음으로 제시한 연속적인 세균의 성장이라는 이론에 세 포유지와 사멸의 개념을 포함하게 하였으며, 그 후 세포 재순환을 포함한 체제로까지 확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활성 슬럿지 처리의 채택은 미생물학적 원리의 이해보다 수십 년 앞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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